2022년 2월 22일 화요일

명재석(베트남센터)

 

베트남 사람들의 금 사랑은 유별납니다. 한 보도에 따르면 2021년 베트남은 전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금 시장이었습니다. 금괴 및 주화 수요는 31.1톤, 금 장신구 수요는 11.9톤으로 합치면 43톤에 이릅니다(VnExpress 2022-02-07). 아시아에서 이 보다 큰 금 시장은 인도, 스리랑카, 중국 밖에 없습니다(인사이드비나 2022-02-22). 베트남 사람들의 금 사랑이 유별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이해하기 쉬운 설명은 문화적 설명입니다. 아시아 문화권에서 금은 긍정적인 상징을 지닙니다. 재력, 행운, 행복, 기쁨, 권위 등을 상징하지요. 결혼, 출산, 돌, 승진 등 축하할 만한 일이 있을 때 금 장신구를 주고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데이터도 문화적 설명을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금붙이 선물 관습이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큰 규모의 금 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인도에서는 결혼 지참금 관습과 결합된 금 선물 문화가 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에는 금에 대한 미신적 소비 문화가 남아 있습니다.

다음으로, 경제발전에 따른 중산층 팽창에 주목하는 경제적 설명이 있습니다. 금을 구입하려면 가처분 소득이 충분해야 합니다. 가처분 소득 증가에 따라 금 수요도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편 경제가 계속 성장하면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재, 내구재, 사치재 물건의 목록이 크게 늘어납니다. 그에 따라 금 수요는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합니다. 두 예측을 결합하면 중산층 확장과 금 수요 사이의 관계는 종 모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련 연구(Liu 2016) 에서는 이 예측이 경험적으로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같은 아시아 문화권이라 하더라도 한국, 일본과 같은 선진 산업국에서 금 수요가 그다지 높지 않은 이유가 설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신흥국 소비자들의 금융기관 불신에 주목하는 설명이 있습니다. 금융기관을 믿지 못해 저축 수단으로 예금 대신 금을 선호한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베트남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은 굉장히 높습니다. 불신의 시작점은 1990년 신용협동조합 사태입니다. 당시 베트남은 시장경제로 이행을 막 시작했었습니다. 은행이라고는 전국을 통틀어 단 다섯 개 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대부분 국유기업만을 상대할 뿐 소매 영업은 거의 하지 않았었습니다. 은행을 대신해 소비자 금융 창구 역할을 했던 것은 신용협동조합입니다. 아직 자본주의적 은행 건전성 감독 경험이 없었던 당국은 이렇다 할 규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조합들은 소비자 예금 경쟁에 나서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금리를 약속하고, 다른 한 편 대출 경쟁도 강화하며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마구잡이로 대출을 해줬습니다. 결국 전국적으로 신용협동조합 수 백 개가 연달아 파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금을 되찾지 못했습니다(Kovsted et al 2005).

불신을 부채질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인플레이션입니다. 인플레이션으로 동화 가치가 크게 하락하자 사람들은 달러와 금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외환 거래와 금 거래는 주로 동화 통화량에 관계된 통화정책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통화정책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인플레이션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자, 당국은 금 수요와 공급을 제한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금을 전매상품으로 지정하고 국유기업 사이공주얼리컴퍼니(SJC)에 전매권을 부여하는 조치까지 취했지요(Leung 2015). 당국의 조치에 따라 당장의 금 공황구매(panic buying)는 잦아들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금 사랑을 끝내 꺾지는 못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금괴 수요(투자용 수요)가 금 장신구 수요보다 3배 가량 큽니다. 전 단락에서 언급한 관련 연구(Liu 2016)를 보면 이런 식의 금 수요 구성을 보이는 나라는 베트남과 태국 둘 뿐입니다. 두 국가 모두 금융기관 불신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뉴스에서는 재물신의 날을 맞이한 일반 시민들의 금 구매 행렬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보다 더 중요한 점은 투자용 수요가 장신구 수요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생산적 기업활동에 투하되었어야 할 자본이 금괴의 형태로 장롱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금융중개기능의 미발달 때문에 베트남이 치루는 기회비용인 셈입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연구자들은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에둘러 표현하기도 합니다. 베트남이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 저자소개: 명재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박사과정. 아시아연구소 베트남센터 조교, 공동연구원. 베트남 개혁을 당 파벌정치로 설명하는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본 페이지의 자료는 저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한 저작물이며,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베트남센터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2022년 2월 10일, 점심시간에 하노이 시민들이 금은방 바오띤밍쩌우 쩐년똥 지점(Bảo Tín Minh Châu – Chi Nhánh Trần Nhân Tông)에서 줄을 서고 있습니다. 음력 1월 10일 재물신의 날(ngày vía Thần Tài)을 맞아 금붙이를 사러 온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VnExpress 보도.

 

2022년 2월 10일 재물신의 날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현지 비디오 리포트입니다. THVL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