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8일 화요일

명재석(정치학전공 박사과정, 베트남센터 연구원)

 

지난 1월 17일, 응우옌 쑤언 푹 국가주석의 중도사임이 발표 되었습니다. 푹 전 국가주석은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차기 당 서기장으로 거명되었습니다. 그 정도의 유력인사였는데, 불행히도 임기 중 해임된 사상 첫 국가주석이 되었습니다.

당장 당내 파벌갈등에 관련된 해석들이 범람했습니다. 응우옌 푸 쫑 당 총비서로의 권력 집중을 우려하는 해석들이 나왔습니다. 2023년 초에 부패 연루 혐의로 해임된 두 부총리가, 푹의 충복(proteges)이라는 진위를 알 수 없는 루머가 나왔습니다. 핵심은, 쫑 총비서가 10년이 넘는 임기 내내 반부패사업을 밀어붙이며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해 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푹 전 국가주석 사임에는 쫑 총서기의 ‘반부패운동 유산 구축’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고위공직자 비위가 표면화되면 정치국 위원도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부패 문제에 대한 정치적 책임성(political accountability for corruption) 구축을 말합니다.

실제로 당은 공식발표에서 푹 전 국가주석의 해임 이유로 ‘부패에 연루된 두 부총리의 해임에 대한 정치적 책임’이라고 명확하게 적시했습니다. 푹 전 국가주석은 이임사에서 본인과 본인의 가족이 부패로 부당이익을 사취한 적이 없다고 언급했습니다. 표면적인 언급들만 본다면 푹 전 국가주석의 해임사유가 정치적 책임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당 수뇌부는 부패에 대한 정치국 위원의 책임이 전례로 자리잡아 사실 상 제도화 된다면, 반부패운동이 자생적 동력을 갖게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시도는 나쁘지 않습니다. 다당제 민주정에서도 집권세력 교체로 통치의 문제(governance problems)에 책임성을 확보합니다. 다만 민주정의 책임성은 선거를 전제합니다. 선거는 ‘일단 치뤄보지 않고는 결과를 알 수 없’습니다. 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다면, 그 누구도 선거 결과를 입맛대로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의 선거를 통해 통치의 문제가 심판받는다면, 모두가 수긍할 만한 신호가 생성됩니다. “부패해서 선거에서 진거야” 혹은 “무능해서 선거에서 진거야” 라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베트남과 같은 체제에서도 그 같은 책임성 확보가 가능할까요? 확실하지 않습니다. 선거가 없고 일당밖에 없으니 오직 인선으로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정치적 책임성’의 기제가 ‘파벌쟁투’와 구분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통치의 문제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누군가 물러난다는데, 그 ‘누군가’ 조차도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람이 아니다보니, 신호가 명쾌할 수가 없습니다. ‘최고위직 중에서 책임 질 사람’을 애당초 무슨 기준으로 골랐냐는 의문이 나옵니다. “그냥 밀려난 거 아니야?” 라는 반응이 뒤따릅니다.

베트남 당국은 ‘나와 내 가족은 부패로 사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는 푹 전 국가주석의 연설내용을 거의 모든 미디어에서 삭제했습니다. 푹 전 국가주석의 발언은 자신의 해임이 정치적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 방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대로 두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당국의 뒤끝은 무엇인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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