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발달은 도시화를 자극합니다. 산업을 따라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듭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 건물은 높이를 더해갑니다. 현대적인 고층 건물이 도시 표면을 점령해 나갑니다. 도시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폭발적으로 확장합니다. 도시가 생명체라면 기반시설은 혈관에 해당할것인데, 이 생명체는 혈관이 닿지 않는 곳으로까지 자라납니다. 바로 슬럼입니다. 산업화 초기에는 악화하는 불평등 추세를 타고 슬럼은 들불처럼 번집니다. 아시아 도시화는 고층 마천루와 고밀도 슬럼이라는 두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암스트롱과 맥기(Amstrong and McGee 1985)는 이러한 현상을 가짜 도시화(pseudo urbanization)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하노이에서는 유독 슬럼을 보기 어렵습니다. 근접한 문화권에서 비슷한 발전수준, 비슷한 경제구조를 지닌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도 그렇습니다. 하노이에서 슬럼을 보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요? 

 

2014년 하노이 도심 항공사진 (c) Dominic Chavez/World Bank 2014. @https://www.flickr.com/photos/worldbank/14486016800

 

낮은 도시화율의 기저효과


 

먼저 낮은 도시화율의 기저효과를 들 수 있습니다. 도이머이 직전 하노이의 도시화율은 15% 내외로 워낙 낮았습니다(Smith and Scarpaci 2000). 그에 따라 슬럼의 확장도 덩달아 늦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하노이의 도시화율이 이토록 낮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회주의 탈도시화(socialist deurbanization)의 유산입니다(권태호 2009). 전통농업사회에서 사회주의로 직행한 체제는 도시화를 적대시합니다. 이 체제의 발전모델은 강행 산업화 모델이라고도 불립니다. 먼저 노동집약적 집단농장에서 자원을 최대한 끌어모읍니다. 그리고 그 자원을 도시에 있는 자본집약적 국유산업에 투자합니다. 이 모델이 잘 작동하려면 농촌에는 사람이, 도시에는 자본이 최대한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도시화가 일어난다? 당국자에게는 악몽과 같을 겁니다. 노동력이 농촌에서 도시로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집단농장에서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도시에는 일자리가 없어 떠도는 노숙자들이 늘어나는 겁니다. 

이 때문에 베트남 당국은 도시를 자본주의적 병폐로 낙인찍고 도시화를 억제했습니다. 당국은 거주와 배급, 일자리, 자녀 보육과 교육, 보건 등 사회권을 한데 묶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단으로 거주를 이탈하면 사회권을 제약받도록 해 두었습니다. 이를 호구제라고 부릅니다(Zhang et al 2006). 또한 ‘신경제구역(New Economic Zone)’이라는 집단농장을 조성하고 도시민들을 강제 이주시켰습니다(Taylor 2013, 614). 

베트남에서 사회주의 탈도시화의 효과는 꽤나 강력했던 것 같습니다. 남부보다 먼저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선 북부의 도시화율은 15 ~ 20% 수준이었습니다. 30% ~ 40%를 오가던 남부의 도시화율보다 훨씬 낮은 수준입니다. 비교적 높았던 남부의 도시화율은 1975년 통일 이후 사회주의 개조 과정에서 20% 가까이 떨어졌습니다(Smith and Scarpaci 2000). 

둘째는 전쟁의 유산입니다. 1955년에 발발한 베트남전쟁의 양상은 남부와 북부에서 달랐습니다. 남부 농촌은 게릴라전의 무대였고, 북부 도시는 미 공군 폭격의 표적이었습니다. 남부 농촌에서는 사람들이 게릴라전을 피해 도시로 피난을 갔습니다. 반면 북부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무차별적인 폭격을 피해 농촌으로 흩어졌습니다. 당시 사이공을 필두로 한 남부의 도시화율은 단숨에 45%까지 급격히 상승했고, 하노이를 비롯한 북부의 도시화율은 10%까지 떨어졌습니다(Smith and Scarpaci 2000). 전후에는 전 단락에서 설명한 사회주의 탈도시화 정책이 전개되며 도시화율을 끌어 내렸습니다.  

요약하자면, 사회주의의 유산과 전쟁의 유산이 결합되어 하노이의 도시화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절대적인 도시화율 수준이 워낙 낮다 보니 도이머이 이후 슬럼 확장을 늦추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타당한 것 같죠?  

1989년 하노이의 모습. (c) Francoise De Mulder/Roger Viollet 1989. @https://www.flickr.com/photos/13476480@N07/51876715971

 

도이머이 이후 인민부문의 역할


 

도이머이 이후에는 어땠을까요? 도이머이 이후에는 산업화와 도시화의 철칙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배후에 광대한 비공식경제를 지닌 호치민의 도시화율은 다시 40% 대로 상승했습니다. 사회주의의 유산이 강고했던 하노이의 인구는 공식 기록으로만 매년 3% 가량 성장했다고 합니다. 비공식 이주인구까지 따지자면 매년 5 ~ 6% 속도로 성장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일반적인 개발도상국 도시화 속도보다 빠르면 빨랐지 늦지는 않습니다.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했을 때 특별할 것이 없는 도시화 추세라면, 왜 슬럼이 적었을까요? 여기에서는 인민부문의 역할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인민부문이란 1980년대 후반부터 하노이에서 주택 건설과 수선을 해 왔던 소규모 무허가 건설업체들, 그리고 돈이 모이면 일단 주택에 투자하는 도시민들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입니다(Evertz 1997; Geertman 2003, 176-177). 

아무렇지도 않게 썼지만, 사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내용입니다. 원칙적으로 보자면 이제 막 시장원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난립하는 소규모 무허가 건설업체들’, ‘주택을 지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은 도시민’, ‘공유지 위에 자기 돈을 들여 짓는 주택들’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현상이 존재했습니다. 1995년부터 2000년 사이 하노이시 주택건축행위 종별분류통계에서 ‘자가건축(self-building by people)’이 차지하는 비중은 60 ~ 70%에 달합니다(Geertman 2003). 

언뜻 말도 안되는 인민부문의 작동과 역할에 대해 알아보려면, 먼저 도이머이 직후 북부에서 일련의 경제적 추세들을 되짚어야 합니다. 1986년 도이머이 직후 몇 년 간 농업과 소비재 제조 부문은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비결은 두 가지 였습니다. 경제 단위(농가와 공장을 총칭하는 말로 이행 초기라 이런 어색한 말을 씁니다)에 자율 관리를 확대하고, 할당목표량 이외에 나머지 생산물의 자유로운 처분을 허용한 조치 덕분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돈을 벌 수 있는 권리를 폭 넓게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유인구조가 개선되면서 모든 사람들이 부를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습니다. 효과는 즉각적이어서 대다수 사람들이 불과 2 ~ 3년 전만 하더라도 꿈도 꿀 수 없었을 정도의 목돈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목돈을 쥔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주택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한국 사람과 유사한 주택 소유 관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례로 한 베트남 속담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로 “물소를 사고, 결혼을 하고, 집을 짓는 것(tậu trâu, lấy vợ, làm nhà)”을 꼽고 있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하노이 사람들은 화폐개혁과 초인플레이션으로 현금이 한 순간에 휴지조각으로 전락하는 것을 10년 사이에 두 번이나 경험했었습니다. 그럴 바에야 부동산에라도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죠. 때마침 1991년 당국은 “주택에 관한 의정”을 발표하여, 모든 사람에게 자택 소유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적어도 주택만큼은 사적 소유권을 보장해 주겠다는데, 주택 신축과 증축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여하여튼 이미 주택을 가진 사람들은 주택을 증축했습니다. 옆으로는 공공도로 용지를 살짝 침범하는 식으로 담장을 밀어내고, 위로는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층수를 올리는 식이었습니다. 대담하게도 공한지에 새 집을 무단 건축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던 모양입니다. 베트남에서 모든 토지는 전 인민의 소유이고 국가가 그것을 관리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참 놀랍습니다. 

사람들이 주택에 투자하기 시작하자 의뢰를 받아 주택 철거, 건설, 수선, 증축 행위를 하는 건축업체들이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Geertman 2007). 기업법 도입 이전이라, 대부분 업체는 비합법적 무등록 사유기업이었습니다. 1993년 첫 토지법 제정으로 주택 및 토지 점유자들의 사적 권리가 폭 넓게 인정되면서, 이러한 ‘인민부문’의 활력은 더욱 증가합니다. 

 

“khoan cắt bê tông (시멘트 절단 및 드릴링)” 문구와 전화번호가 벽체에 적혀 있습니다. 이른바 ‘인민부문’에 속하는 소규모 무허가 건축업체의 연락처입니다. (c) 명재석 2022. * 촬영장소: Ng. Hội Vũ 거리. Hàng Bông, Hoàn Kiếm, Hà Nội.

 

인민부문에 대한 당국의 전향적인 대응도 중요했습니다. 슬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공공설비(public utilities)와의 단절입니다. 초반에 ‘혈관이 없는 생명체’로 비유했었죠. 전형적인 슬럼의 이미지는 수도, 전기, 통신, 가스, 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무허가 급조 주택군입니다. 하노이 건축 당국은 무허가 건축행위의 통계를 수집해 둘 정도로 인민부문에 관해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탈법적 행위를 애써 막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신축 및 증개축 주택들이 아주 기초적인 요건들만 충족하면 공공설비를 기꺼이 연결해 주었다고 합니다(Quinn 2014; Geertman 2003). 사회주의 체제 고유의 가부장적 태도가 작용한 것이겠지요. 어쨌건, 인민부문과 당국의 전향적 조치가 맞물리면서 하노이에서는 대규모 슬럼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암스트롱과 맥기가 지적한 ‘가짜 도시화’의 예외적 사례인 것입니다. 

인민부문의 활력은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90년대에 절정에 달했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하노이 건축 당국은 마스터플랜 중심의 대규모 택지 개발과 재개발로 도시정책을 선회하면서, 그간 방관해왔던 소규모 무허가 건축행위를 단속하기 시작합니다. 현 시점에는 인민부문은 사실 상 효력을 다 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다만 이행 초기 사업화 개시 국면에서 슬럼 확산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잘라냈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명은 완수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오늘 날 하노이에서는 극단적인 슬럼을 쉽게 보기 어려워 졌습니다. 

 

참고문헌 목록

Evertz, H., (1997) Popular Housing and Land Acquisition in Hanoi. Unpublished paper presented at the Euroviet III Conference, University of Amsterdam, The Netherlands.

Geertman, Stephanie (2003) “Who Will Build the Vietnamese City in the 21st Century? Globalization and Tradition in Land and Housing in Hanoi.” Journal of Comparative Asian Development 2(1)

Geertman, Stephanie (2007). The Self-organizing City in Vietnam: Processes of Change and Transformation in Housing in Hanoi. Technische Universiteit Eindhoven

Quinn, Lauren (2014). “Hanoi: Is It Possible to Grow a City without Slums?.” The Guardian. August 11th.

Smith David W., Scarpaci Joseph L. (2000). “Urbanization in transitional societies: an overview of Vietnam and Hanoi.” Urban Geography 21(8)

Taylor, K.W. (2013) A history of Vietnamese. Cambridge University Press.

Zhang, H.X., P.M. Kelly, C. Locke, A. Winkels, W.N. Adger. (2006). “Migration in a transitional economy: beyond the planned and spontaneous dichotomy in Vietnam.” Geoforum 37 (6)

권태호. (2009) “하노이의 개발과 도시계획: 역사적 과정과 정책적 함의,” 『아시아연구』12(1)

 

 

* 저자소개: 명재석.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박사과정. 아시아연구소 베트남센터 조교, 공동연구원. 베트남 개혁을 당 파벌정치로 설명하는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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